일제에 충성을 하게끔 하려는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그 규모와 내용은 보잘 것 없었다. 그 후 해방과 6.25사변을 맞이한 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갑작스런 구호활동의 손길이 일시에 몰려들었으나, 워낙 빈곤이 오래 계속되어 온 데다가 물질과 인력의 부
것을 시초로 하여, 1906년에는 독지가 이지하가 경성보육원을 설립하였다. 1944년에는 조선 구호령에 의해 구호시설이 미비하게나마 운영되었었고, 6.25동란 이후의 급증한 요 보호자에 대한 수용구호의 필요성으로 인하여 외국 민간원조에 의한 구호사업이 활발하여 각종 사회복지시성이 급증하였다.
사회복지사업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것은 조선 말엽인 1888년에 프랑스 주교가 설립한 천주교회에 의한 고아원이 개설된 것이 최초이며, 사회사업 내지 사회복지사업의 발달은 개화기와 일제시댕 와서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사회복지에 관한 대표적인 법령으로 조선구호령이 있다
사회복지제도이며, 구빈제도는 국가정책으로 실시하였지만 부락 단위의 자치제도도 매우 발달하였다. 최근까지도 매우 발달한 구빈제도와 자조적인 계조직은 수재민을 구호하기 위한 제도였으며, 자조사업으로서 혈연, 지연의 조직적 노력은 매우 발달하였다. 구빈정책은 삼국시대에서부터 성행하였
복지에 대해 사회 및 정부의 책임이 보다 확고해짐으로써 비교적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실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1945년~1960년 동안은 해방 후 한국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전쟁고아, 기아 및 부랑아의 발생으로 정부 및 국내․외의 민간단체에서는 많은 아동보호시설을 설립하여 응급구호를 맞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