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란_
“궁궐 안 각 처소의 안살림을 담당했던 전문직 여성들”
조선시대에는 각 처소 별로 100-30명 정도의 궁녀들이 배치되어 총 500 내외의 궁녀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최고급문화인 궁중생활문화를 전승, 창조한 주역들.
조선시대 이전의 궁녀
전통시대 동양의 궁녀는 국왕의 거주공간
1. 조선시대의 세자
차기 왕위 계승권자. 왕세자․세자․세자궁․동궁(東宮)․춘궁(春宮)․정윤(正胤)이라고도 하며, 저하(邸下)라는 존칭어로 불렀다. 기원은 왕위계승이 부자세습제도로 확립되면서 시작되었다. 태자는 부왕의 재위 기간 중 책봉의식을 거쳐 결정되는데, 자격조건은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세자책봉
광해군은 출생 순으로 보면 선조의 둘째 아들이다. 게다가 후궁에게서 출생한 서자였다.
서자 그것도 둘째아들에 지나지 않던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 된 것은 임란이라는 비상사태 때문이었다.
임란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선조는 왕위에 오른 지 20여년이 되었는데
광해군 그는 누구인가?
광해군은 선조의 둘째아들이며 이름은 휘는 혼(琿)이다. 어머니는 선조의 후궁인 공빈김씨이다. 의인 왕후 박씨에게 소생이 없자 공빈김씨 소생의 제1왕자 임해군을 세자로 삼으려 했으나 광패하다고 하여 보류하고 1592년(선조25)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둘러 세자에 책봉되었
2. 광해군과 인목대비
(1) 광해군 1575(선조8)~1641(인조19)
조선 제15대왕. 재위 1608~1623. 이름은 혼(琿). 선조의 둘째아들이며 어머니는 공빈김씨이다. 광해군의 비는 판윤 유자신의 딸이다. 의인왕후 박씨에세서 소생이 없자, 공빈김씨 소생의 제1왕자 임해군 진을 세자로 삼으려 하였으나 광패(狂悖)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