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박해의 시작 -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
히데요시도 처음에는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통일정책이 일환으로서 기독교를 보호하고 이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데요시는 1587년 6월 돌연 하카다에서 < 그 내용은
1. 일본은 신국(神國)이므로 기
기리시탄들은 다른 동양인들과 같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이 조상들을 천주교의 성인들과 동일시 함
1)사회적 배경
- 정부의 신도국교화 정책 천황제 이데올로기
2) 메이지 정부의 기독교 정책과 수용
- 본래는 막부의 기독교 금지 정책 답습
이유) “일본 신을 모독하고 풍속
기독교를 묵인하다시피 했다. 도쿠가와 [막부]가 개설된 1603년 무렵은 기독교의 최전성기로서 선교사가 로마 교황청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그 당시 신자는 70만 명을 넘고 북쪽으로는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요지에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측근들은 일본이 신국으로 불법을 존중
일본 총인구의 1.3%인 30여 만 명이나 되었다. 이 중에서도 진정한 가톨릭으로의 개종이 상류지도층에서 일어나 1587년 도요토미히데요시에 의한 금교령이 내려지기까지 상당수의 영주와 제후들이 세례를 받았고, 더러는 자신의 개종 이후 자기 영내의 백성들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제로 요구하기
것을
해결하기 위해 1587년 7월 24일 금교령을 내리게 되었다.
기독교 박해의 이유
1.신도의 지지와 대중화를 하여 천황의 신격화 진행
2.서양 제국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
3.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나님에게만 순종하기를 요구하는
기독교 교리란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파탄시키는 요소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