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10·26사건의 시대적 배경
1979년 10월 26일 저녁 궁정동의 한 중앙정보부 안가에서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술자리가 벌어지고 이었다. 이 자리에는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중앙정보부자,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등이 참석했다. 6시 5분경부터 시작된 술자리에서는 부마사태, 김영삼 씨
Ⅰ. 서론
대통령을 측근에서 모시고 있었던 김계원, 김재규, 차지철이 세 군인 출신 인사들은 박 대통령과 키가 거의 같았다(1백64cm내외). 곧 궁정동에 모이게 될 이 네 사람은 유신정권의 핵심이었다.
유신정권의 정치조직인 공화당과 유정회, 그리고 군부는 이들에 의하여 통제되고 있었다. 이들은
김계원 비서실장과 연회를 하던 중 김재규가 차지철에게 먼저 총을 발사한 후 차례로 박정희 흉부와 머리를 총격해 살해한 사건이다. 김재규는 박정희와 육사 동기로 유신을 지탱하는 중앙정보부의 수장이었으며 신복이었다. 그런 그가 역설적으로 박정희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다.
1. 10.26 발생원인
10.2
김계원 비서실장은 내란 공모죄로 구속, 경호실장 차지철은 피살되었다. 이로 인해 청와대, 중앙정보부, 비서실, 경호실은 무력화되었고 군부만이 유일한 권력기관으로 존속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정보수집이나 수사 능력이 있는 기관은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검찰, 경찰, 대통령 비서실, 대통령 경
김계원 비서실장은 내란 공모죄로 구속, 경호실장 차지철은 피살되었다. 이로 인해 청와대, 중앙정보부, 비서실, 경호실은 무력화되었고 군부만이 유일한 권력기관으로 존속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정보수집이나 수사 능력이 있는 기관은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검찰, 경찰, 대통령 비서실, 대통령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