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김시민장군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면오(勉吾)이다. 아버지는 지평을 지낸 김충갑(金忠甲)이며, 목천(木川)에서 출생하였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軍器寺)에 있다가 1581년 부평부사가 되었다. 당시 백성의 구휼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가 1583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진주성 전투(진주대첩)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돌아가셨지만, 우리 할머니는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장군의 후예이다. 김시민장군 관련한 자료(족보, 쓰시던 물건) 등이 문중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진주에 거주하고 계셨기 때문에, 필
김시민장군의 공신교서’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을 되찾다.
- 74434는 방송을 통해 실제로 외국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되돌려 받았다. 1914년 3월 3일, 수백 년 동안 오대산사고에 보관되어 온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을 일본에게 약탈당했으나 93년이 지난 2007년, 74434는 이 프로그램을
사람들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며 마음 편히 웃으며 즐길 수 있다. 그다지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 지는 장면을 보고 즐기는 것이 시청자 행위의 전반이다. TV에서는 상당한 양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평일 방
(3) 최경회 장군과 2차 진주성 전투
- 2차 진주성 전투 직전 조선군의 상황
: 진주성 방어전략에 의한 의견충돌로 인해 성을 비우고 병력을 보존하자는 공성파와 왜군의 호남지역 진출을 막기 위해 진주성을 사수해야 한다는 수성파로 갈림.
●공성파 : 의병장 곽재우와 임태영, 순변사 이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