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정철, 송순, 양산보 등 조선 시대 충신들의 유품, 가사문학 관련작품 6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을 담양에 전시한 것은 귀양살이와 냑향한 선비들이 이곳에서 후진양성을 하면서 만든 가사작품을 남긴것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가사문학의 기원은 신라가요라 하는가 하면 고려말에서
특징은 또한 종장 마지막 마디의 생략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의 연구 결과는 종장 마지막 마디의 생략을 조선조 시조창의 전통을 이은 결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생략 현상이 조선조 후기의 가집인 南薰太平歌에 게재된 시조의 종장 처리 방식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노계 박인로(15611642)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기존 연구를 살펴보도록 한다. 노계에 대한 연구는 이은상이 대략적으로 소개하고 연구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수십 편의 논문 및 저서가 축적되어 있다. 이렇듯 많은 양의 연구 성과가 축적된 사실 그 자체가 곧 노계와 그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특성
윤선도의 생애에는 몇 가지 특이한 사항들이 발견되었다. 어린 시절 생부모(生父母)를 떠나 양부모(養父母) 밑에서 지낸 것, ≪소학(小學)≫을 중시한 것, <병진소(丙辰疏)>를 올려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을 논박하다가 경원(慶源)으로 유배간 것, 인평대군(麟坪大君)과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왕자
본질이나 특성의 한 변을 설명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불려지고 지어진 이 시조는, 우리 근대 문학의 다른 장르들과 함께 어엿한 창작시의 한 장르로 인정되면서부터 음악으로서의 시조보다 오히려 문학으로서의 시조로 그 인식과 개념이 바뀌어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