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탕개의 난을 계기로 서얼과 공사천의 군역편입이 실현되었다.
지금까지 무과를 통해 본 천인의 신분상승은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임진왜란 직후 천인의 무과 급제가 광범위하게 실현되었다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과 양 호란 등의 전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양반제 사
니탕개(尼蕩介)의 난을 평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화기였다. 일반적으로 부리로 화약과 철탄을 장전하고 약선혈에 불을 붙여 발사하였다. 발사물은 총통과 비슷하여 피령목전(皮翎木箭)과 철탄 15개 정도이며, 사거리는 600보 정도였다고 한다. 문헌에는 대(大)승자총통ㆍ차(次)승자총통ㆍ소(小)
니탕개(尼蕩介)의 난을 평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화기였다. 일반적으로 부리로 화약과 철탄을 장전하고 약선혈에 불을 붙여 발사하였다. 발사물은 총통과 비슷하여 피령목전(皮翎木箭)과 철탄 15개 정도이며, 사거리는 600보 정도였다고 한다. 문헌에는 대(大)승자총통ㆍ차(次)승자총통ㆍ소(小)
난니탕개(尼蕩介)의 난 때에 신립(申砬)이 적을 토벌하는 데에 크게 공헌한 화기로, 북방의 여진족을 격퇴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런 반면에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의 조총(鳥銃)에 비하여 성능이 떨어져 크게 빛을 보지 못하였다. 한편, 승자총통은 화차에도 설치되어 육전과 해전에서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