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선생이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거처를 하던 건물입니다. 이곳에서 목민심서 등의 저술작업이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으로 오르다보면 초당 앞에 있는 서암(西庵)은 다산의 제자들이 거처하던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암, 서암 이 두곳은 1970년대에 강진군에서 복원해 놓은 건물입니다.
Ⅰ. 전라남도(전남)의 지방
1. 광주와 영산강유역의 내륙지방
1) 광주
광주는 대략 호남지방의 중심부에 자리한다. 해방 당시에 약 8만이었던 광주의 인구는 시역의 확장과 더불어 1955년에는 거의 20만으로 늘어나고, 1970년에는 50만을 넘어섰다. 1988년 이후엔 100만을 넘어서게 되었다. 광주지방을
당시 병영의 융성함을 반증하는 증거의 하나로 강진군 옴천면에서 병영으로 오는 고개의 이름이 귀활재(활기가 넘치는 병영으로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라는 사실이며, 병영중학교 앞에 조산(造山, 兆山)이라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는데 평지인 원래의 땅에 만든 산이라는 의미에서 조산이라고 한다.
정조의 총애가 시작되다
22세(癸卯年, 1783) 봄에는 경의과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게 됐다. 여기서 다산은 10년 연상인 33세의 정조를 처음 만난다. 정조가 중용강의(中庸講義) 80여 조목에 관하여 답변토록 과제를 냈다. 이발기발(理發氣發)의 문제에 있어서 이벽(李檗)은 퇴계 이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