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탐욕스러운 폭군’의 이미지로 널리 알려진 수양대군을 김동인의 소설 <대수양>의 원문을 바탕으로 그를 옹호할 수 있는 근거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누고, 이를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 기록(흔적)을 통해 증명하려 시도해보았다. <대수양> 소설 원
역사적 흔적 안위 염려
(수양대군이) 도승지 강맹성에게 단종으로 하여금
지나지게 애통해 하지 말고 기운을 차려서 몸을
상하게 하지 말 것, 진선(왕에게 음식을 받침)하는
것을 조심하여 살펴서 올리라는 말을 하였다.
[단종실록 1452년 5월 17일 ]
집사 환관이 모두 안평대군에게 아부하니 ..
대군의 왕세자 즉위를 물려받은 부분이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차남인 효녕 대군을 제치고 왕세자위를 물려 받았다. 나는 이러한 왕세자의 권리가 이양되는데에는 단순한 한가지 요인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형제 관계에서 과연 어떤 내재적 측면
Ⅰ.서론: 조선시대 초기의 회화
조선시대는 우리 역사상 회화가 다양한 양상을 띠며 대단한 발전을 이룩했던 시기이다.
이전 고려시대와는 달리 억불 숭유 정책으로 고려시대에 많은 활약을 했던 승려들의 활동은 약화되었지만, 학문을 중시하고 소박하고 진실됨을 추구하던 유교 정신은 새로운 미
Ⅰ. 서론
한국 역사상 단군이래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식시키기 위해 자기희생을 각오한 장면은 틀림없이 소신과 신념이 있는 <정치가>이었다. 이해관계에 따라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하는 정치인은 결코 정치가라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장면은 후진국의 정치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