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교(大同敎)를 창건하여 종교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유교계를 친일화하려는 일제의 공작에 대항하였다. 이러한 민중계몽 ·교육 ·언론 활동도 1910년 국권피탈과 더불어 일단 막을 내리고, 1911년 가을 만주 위안런현[桓仁縣]으로 망명하면서 나라 밖에서 구국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
들어가며
조광의 「개항 이후 유학계의 변화와 근대적응 노력-전통 유학의 근대종교화 운동을 중심으로 」논문은 우리나라 전통인 유학이 근대화시기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설명한 논문이다. 근대종교화 운동을 중심으로 유교계 종교운동의 배경, 유교 개혁운동과 대동교의 창설과 반일유교운동에
2. 지명조사(판암동,효동)
1) 판암동
동명의 유래는 널로 놓은 다리가 있었으므로 너더리·판교(板橋)라고 하였다.
회덕군(회덕현) 외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신리(上新里)·저전리(楮田里)·산소리(山所里:산소골), 동면 구정리(九丁里)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조선 태종
이상으로 고구려의 각 지역에 위치한 고구려의 도성과 이와 관련된 주요한 논쟁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기존의 학설이었던 산성과 평지성을 묶어서 도성을 형성한 것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고, 환인 지역 시기 도성 비정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