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중국을 찾고 있고 일주일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비행기는 836편이나 돼 국내노선 총합보다도 많다. 많은 왕래와 접촉이 있다 보니 불미스러운 사건과 그로 인한 오해와 다양한 문제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중국인들의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감정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기
2. 1960~70년대 한국인들의 대미인식
1960~70년대 들어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점차 ‘객관화’, ‘현실화’ 하기 시작한다. 이는 우선 한국과 미국의 관계의 변화에 기인한다. 정치적으로는 미국은 자신들이 지지하던 장면정권에 대한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을 애써 부인하지는 못했지만 이
대미인식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양국간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주한민군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 또한 변화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을 설정하였다. 이에 우리는 주한미군에 대해서 느끼는 한국인의 감정의 실체는 무엇이며, 이러한 감정의 실체에 영향을 주는 여
반미주의는 그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감정적 반미주의(반미감정)는 인간의 정상적 느낌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강한 영향력과 존재, 한미 양국 간의 문화적 배경의 차이 또는 의견차, 그리고 한국인의 자존심의 증대에 따른 미국의 오래된 오만에 대한 청산의 요구에 의해 나타난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등장한 신군부세력에 의한 쿠데타는 또다시 한국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이로써 이후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한국에서 민주화를 향한 움직임은 그 뒤 수년 동안 철저히 저지되었다. 또한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장군의 신군부가 한국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함으로써 ‘서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