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한제국의 선포
아관파천 1년 만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1897년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1897.2.20) 자주국가로서의 모습을 확립하기 위해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로 개칭, 왕을 황제로 칭하여 자주국가임을 국내외에 선포. 10월에 제천단인 원구단에 나아가 황제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제국 승격에 대한 여론이 빈번하였던 점을 두 번째 배경으로 본다.
Ⅲ 정치면
ⅰ 광무개혁 추진
광무개혁은 대한제국이 완전한 자주 독립권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단행한 내정 개혁이다.
먼저 군제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을 하였는데 친위대,시위대,호위대를 개편 및 창설하고, 황제가 대원수가
1. 들어가는 말
광무개혁(光武改革)이라는 말을 할 때, 그 기간은 1897년(광무 원년)에서 1904(광무 8년)까지를 뜻한다. 갑오개혁이 좌절되고 대한제국을 이끌 신정권이 수립되는 1896년(건양 원년) 2월의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부터 1904년 2월의 러일전쟁으로 일제가 우리나라 정치에 깊숙이 간여하게
만들려는 자강정책이었고 전면 서양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1880년 중국의 ‘총리아문’과 비슷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여 개혁의 중심기관으로 삼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성격의 개화논리는 차츰 동도서기론으로 구체화되고, 대한제국기에는 구본신참, 즉 옛것을 근본으로 하고 새로
대한제국 성립 전후의 국내외 정세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이후, 러시아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이 커졌다. 일본은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조선에서의 기존과 같은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또한 영국 역시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서 제물포에 함대를 정박시켰다.
이러한 세력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