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와 수구파는 1898년 절영도의 러시아 조차 문제로 격돌하였다. 조차가 침략의 첫 단계라고 생각한 독립협회는 만민공동회를 열어 절영도 조차 요구에 반대하고 제국의 자주독립 강화를 결의 한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의 요구가 철회되고 일본도 국내의 석탄고 기지를 되돌려주었으며, 양국은
독립협회는 자주적 수구파와 연합하여 친러 수구파의 반대를 이겨내고 1897년 2월 20일 러시아 공사관에서 고종을 환궁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 결과로 조선은 1897년 10월에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는 조선이 ‘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서, 주변국인 청나라, 일본을 비롯하여 서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독립협회는 창립되었다.
독립협회의 창립은 한국근현대사에 있어 많은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독립협회가 주로 상류층에 속하는 신 지식층을 중심으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 계몽 운동과 민의(民意)를 정치에 반영하도록 하는 등 아래로부터의 개혁에도 많은 힘을 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