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의 상황
1.권문세가의 횡포
권문 세가들이 국정을 좌우하는 한편, 원의 세력과 결탁하여 거대한 농장을 소유하고 수탈을 자행하여 전제를 문란하게 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
반원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원의 세력과 싸워야 했고, 안으로는 권문세가를 눌러야 했는데, 원의 압력으로
동북면(東北面)과 서북면(西北面)은 원래 사전이 설정되지 않는 지역이었으나 지방세력과 중앙관리들에 의하여 임의로 사전이 설정되어 군수조달에 차질을 초래하는 등 폐해가 심각하였다. 당시의 사전은 이미 조업전(祖業田) 조업전(祖業田) :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온 논밭, 자손에게 사사로이 대대
동북면 병마사 간의대부 김보당(金甫當)이 동계(東界)에서 군사를 발동하여 정중부(鄭仲夫), 이의방(李義方) 등을 토벌하고 전왕(의종)을 복위(復位)시키려 하니 동북면 지 병마사 한언국(韓彦國)이 군사를 데리고 이에 호응하였으며 장순석(張純錫) 등을 거제(巨濟)로 보내 전왕을 모셔다가 계림에 있게
동북면 침입을 계기로 위기 모면
불필요한 정쟁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양지) 목격한 정도전은 민생을 위한 역성혁명을 다짐하며 최영과 이성계를 만남.
이성계에게서 새 군주의 모습을 확인한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안변책으로 위기가 가중되던 이성계를 도움
이인임 일파는 안변책이 이성계의 것이 아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이 의종의 복위를 꾀하고 난을 일으킨 데 이어, 서경 유수 조위총 등이 지방군을 이끌고 중앙의 무신 정권에 반대하여 난을 일으켰다. 한편, 무신들의 가렴 주구로 생활이 어렵게 된 농민과 천민들도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였다. 천민과 노비들은 신분 해방을 외치며 봉기하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