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레샬(Monsieur Marechal)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한 루이 비통은 섬세한 패킹 기술로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패커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으며, 결국 외제니 황후(Eugenie de Montijo, 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의 전담 패커가 되었다.
1854년,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외제니 황후의 후원으로 자신의 이름을
그는 가방을 만드는 마레샬이라는 사람의 견습공이 되어 가방을 만드는 일과 함께 귀족들의 여행 짐을 꾸며 주는 일을 하게 되는데 당시의 귀부인들에게는 페티코우트 위에 수십 미터나 되는 천을 늘어뜨리는 드레스가 유행이었다. 이런 귀족들이 여행을 하면 수십 개의 트렁크를 마차에 싣고 다녔다.
마레샬의 견습공이 된 루이비통은 여행용 가방을 제조하는 전문가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그는 그 당시 널리 쓰이던 반원형 모양의 트렁크 대신, 여러 개의 가방을 쌓아 올릴 수 있는 평평한 직사각형 트렁크를 개발했다.
루이비통은 전세계에 14개 생산공장을 갖고 있는데 모든 공장에서 나온
마레샬의 견습공으로 귀족들의 여행 짐을 꾸려주는 일을 하게 됐다.
당시의 귀부인들에게는 페티코트 위에 수십 미터나 되는 천을 늘어뜨리는 드레스가 유행이었는데, 이들이 여행을 하면 수십 개의 트렁크를 마차에 싣고 다녀야만 했다. 루이 비통은 이런 의상들을 구김이 가지 않도록 꾸렸고 곧 그
루이비통은 프랑스 앙쉐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목공소를 운영하는 집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는 어릴 적부터 나무 다루는 일을 보며 자라게 되었다. 14세가 되던 해 그는 마침내 파리로 갈 결심을 하고 무일푼의 처지로 걸어서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에서 그는 마레샬의 견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