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철 목사님의 생애
소양(蘇羊) 주기철 목사는 1897년 경남 창원군(지금 진해시) 웅천에서 주현성(朱炫聲)씨의 4남 3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1900년 가족과 함께 웅천 교회 교인이 되었다. 웅천 개통학교 졸업하고 정주 오산학교에 입학하였다. 오산학교에서 청년 주기철은 오산학교의 설립자인 남강
“예수보다 더 귀한 존재는 나에게 있지 아니합니다. 나의 이름이나 소유나 나의 고난이나 평안이 다 예수를 위하여만 필요하였고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죽거나 살거나 내 평생 사랑할 이는 예수뿐입니다. 어찌하여 예수를 사랑하느냐? 나는 예수를 믿어 병 나음을 얻었고 모든 難문제를 해결하였습니
추천사유:
저희 교회 신도인 000군(양)을 추천하게 된 것을 담임목사로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000 신도는 모태신앙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심이 두터워 교회일에 언제나 헌신하여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김없는 밝은 성격 속에 구령애가 가득 자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에도 또래에서 구심점
목사님과 함께 공산주의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27명의 성도들이 1945년 12월 2일에 하나님께 창립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1946년 11월 15일 베다니 전도교회의 교회이름을 당시의 지명에 따라 지금의 ‘영락 교회’로 개칭하게 되었다.
1947년 9월에 영락교회는 예배당 건축 위원회를 결성해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