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세기 말 동북 아시아 정세에 대한 개괄
19세기 말 동북아시아는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서양 국가들과 충돌하며 혼란의 시대를 열고 있었다. 서구 문명과 동양 문명의 충돌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곳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수 천년 동안 동
“연해주 처분 청.러 베이징 조약 무효”
대다수 국내 관련 학자들은 러시아와 청나라의 베이징 조약은 무효라고 단언한다. 청나라가 조선의 영토인 연해주를 일방적으로 러시아에 넘겼기 때문이다. 1712년 세운 백두산 정계비는 청과 조선의 동쪽 경계를 ‘동위토문’이라고 규정한다.
조선이 토문강
I. 머리말
제 2 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때로부터 5년 만에 동북아의 화약고 한반도에서 핵무기 사용의 가능성과 제 3 차 세계대전의 위험성마저 내포한 채 폭발했던 한국전쟁은 정전 후 세계 여러 저술자들에 의해 서로 다른 각도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미국 올바니시 소재 뉴욕주립대학교에 설치된 한
1. 서론
유럽연합의 통합과정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루어 온 거대한 정치적 실험이었다. 유럽의 질서는 주권 국가들 간 경쟁 속에서 일정한 세력균형을 이룩함으로써 평화 안정을 유지하는 갈등적 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럽 국가들은 2차 대전 이후 공동체를 형성하고 여기에 점차
2) 흑해,지중해방면: 러시아는 서남쪽으로 부동항을 얻기 위해 영토확장에 전열을 기울였는데 당시 발칸반도,중동의 핵심강국은 오스만제국이었다. 오스만제국이 1699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탈취하려다 패하자 러시아는 이 때를 틈타 아조프지방을 획득했다. 그리고 흑해에 함대를 건설하고 발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