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사(四天王寺)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통해 화랑집단에 소속된 낭도승(郎徒僧)으로 국가의 안녕과 관련된 일을 맡았으리라 짐작된다.
- 최치원 : 헌안왕 1년(857년)에 태어나 죽은 해는 알지 못한다. 12세에 육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 갔다.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해
사천왕사 앞길을 지나며 대금(笛)을 불어 하늘의 달을 멈추게 한 신통력으로 얻은 승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대금을 불어 하늘의 달을 멈추게 한 신통력을 기리어 이 마을의 이름도 월명리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그는 경덕왕(742˜765) 19년(760) 4월 초하룻날에 두 해가 나란히 나타나서
사천왕사의 가풍을 이은 능준대사의 문인이며, 사천왕사의 주석 승려답게 주술적 치유에 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지은 저서가 있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도솔가’를 지어 태양의 괴변을 물리치고, 죽은 누이의 제사를 지내는 ‘제망매가’를 통해 우리 역사 문화의 전면에 문화인으로 나
사천왕사, 감은사, 봉덕사를 비롯하여 양산 통도사, 부산 동래 범어사, 영주 부석사, 합천 해인사, 구례 화엄사, 보은 범주사 등이 전국 각지의 요지에 창건되어 오늘의 유명한 사찰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특히 신라 진흥왕시대의 화랑도들은 전국 명소를 순례 여행하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와 애국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