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1590년 무렵까지는 배우로도 활약을 하여 신진연극인으로서 평판이 높았다는 기록이 있다. 1592년부터 3년에 걸쳐 런던에 유행한 페스트 때문에 극장은 폐쇄된 이후부터 본격적인 극작활동에 들어간 셰익스피어는 <로미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십이야>, <줄리어스 시
만 아내와 다정한 삶을 누린 흔적은 없고, 그 후 런던의 극장에서 허드레 일꾼으로 출발하기까지 의 8년간의 행적에서 시골학교 교사, 귀족의 심부름꾼 등으로 전전하며 방황한 삶의 흔적이 있다. 30 세가 된 1594년부터 의전장관(Lord Chamberlain) 극단에 소속되어 극작가로서 승승장구할 계기를 맞게된다.
지금 셰익스피어의 창작물로 알려진 작품들이 스트라트포드에서 탄생한 셰익스피어가 아닌 다른 원작자가 있다는 설이 심심찮게 대두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이런 설은 셰익스피어 개인 의 천재성을 아무리 인정한다 해도 그런 거작을 그 기간 동안에 연속 창작할 만한 재능을 닦은 수학 경력을 셰
셰익스피어의 소년시절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록이 없고 연극과의 관계도 분명치 않으며 런던으로 나온 이유나 연대도 자세하지 않다. 런던 시절 배우로서의 생활은 1580년대 말로 추정된다. 런던의 극장 고용원이 되어 어깨너머로 연극이나 문학에 대한 소질을 익혔다. 레스터 백작 밑에서 일을 하다가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숙하게 보이는 연극대본을 쓴 데는 당대의 극장조건이 그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극장구조는 지붕이 뚫린 반옥 외 극장인데다 무대가 개방형이어서 앞면의 막이 없었으며 장치, 조명 등은 사용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