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유민들에 대한 신라의 대우
텍스트 <진한>에는 “진한(辰韓)의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진(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한국(韓國)으로 오자, 마한이 동쪽 경계의 땅을 떼어 주고 서로 불러 무리를 이루었다” 김원중 역,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5, p. 63
라는 말이 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
일본의 신화
- 일본 신화에서 나타나는 삼통(三統)이후 유민(遺民)들의 흔적 -
I. 서론
신화는 어떤 민족의 신성한 과거를 말해주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우주에 존재하는, 심원한 힘과의 유대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말하자면 신화는 어떤 문화에서 그 문화의 밑바탕이 되는
금릉팔가
청대 회화는 모두가 틀에 박힌 것이라는 인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명의 쇠퇴와 멸망, 만주족의 침입, 내란과 이에 따른 수십 년간의 혼란에 이은 강희제의 안정기에 이르기까지의 17세기의 역사는 이 시기의 그림을 통해서 읽어낼 수 있다. 유민(遺民)이라고 불렸던 명의 충신들은 새로운
유민(遺民)들을 추격하여 고려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보다 앞서 요나라가 멸망한 뒤 금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던 거란족이 1211년 (희종 7)경부터 몽고의 도움을 받아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지배층의 내분으로 야율유가(耶律留哥)가 몽고에 투항하였고, 이를 계기로 몽고가 거란을 공
유민(壬亂遺民) 침수관씨가(沈壽官氏家) 세전본(世傳本 이 異本은 韓國語文學會 編 古典小說選 螢雪出版社 (1972)에 실려있다.
)을 대상으로 음운학적 분석을 통해 그 필사(筆寫) 및 창작연대(創作年代)를 추정했는데, 그는 심씨 A본의 음운 표기가 16C~18C사이 인 것인바, 이로 볼 때 숙향전의 창작연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