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관계를 주제로 날카롭게 다루고 있다.
그는 중앙문단과 교우관계를 갖지 않으면서 시종일관 실력하나만 믿고 오뚝이처럼 버텨나간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광복직후 평양예술문화협회장, 북조선문학예술 총동맹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이후 작품집 <장삼이사張三李四>를 발표했다.
장삼이사』(1941년 작)는 시기적으로 위에서 논급해왔던 바와 같이 어둠으로 뒤덮인 시대의 절망과 고뇌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시대의 비극적인 상태로 인해 <어떻게 살이야 인간은 후회없는 인생을 살 것인가>하는 과제와 <산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살 수 있다>라는 운명적인 체념의 괴리가 작
속에 시대와 생활의 문제를 밀착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8․15광복 직후 김조규 유항림 등과 함께 결성한 평양예술문화협회의 회장 그리고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그 밖의 작품에는 1941년 4월 '문장(文章)' 폐간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인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있다.
장삼이사」(1941)를 검토함으로써 비로소 그 해답을 얻어낼수 있다.
최명익은 당시의 不進不退하는 지식인의 정신적인 상태를 그리는데 심리주의 기법을 사용하여 작품 전체에 통용시키고 있다. 이것은 작가와 현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갈등을 표면화하기 어렵게 되자 소설 속에 주관적
<장삼이사>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이라는 뜻으로) 평범한 보통사람을 이르는 말.-작품에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이 작품의 첫장을 넘기기 전에는 막연히 시시콜콜한 일상 애기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삼이사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저 평범한 사람이 기차여행이라는 배경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