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의 침략은 강화가 성립되는 고종 46년(1259)까지 약 30년 동안 대략 6차에 걸쳐 이루어졌고 전투는 그 기간 동안 지속된 것이 아니고 간헐적으로 발생하였다.
2. 몽고와의 전쟁
(1) 배경
고려와 몽고의 관계는 1218년(고종 5)에 몽고군이 거란의 유민(遺民)들을 추격하여 고려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
Ⅰ. 서론
칭기스칸이 만들어 가는 세상의 질서에 동참하는 일, 거기서 맛보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그들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일깨워주고 그들 스스로의 삶을 값지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후회 없이 말을 달렸다. 그리고 그들은 질주가 가로막힐 때마다 격렬한 전투를 피하지 않았다.
고려의 거절
고종 28년 11월 오고타이 사망
1244년 구육의 칸 등극
고종 34년(1247) 몽고군 침입
고종 36년(1249) 구육의 죽음 - 회군
최충헌의 정권을 계승한 최우가 치안유지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에서 비롯.
항몽전에서는 그 선두에서 유격전술로 몽고군을 괴롭혔으며,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몽고
고종 12) 음력 1월 몽골 사신 저고여(箸告與)가 귀국하던 도중 자객에게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몽골에서는 고려의 소행이라 주장, 고려에선 국경을 넘어서 금나라 사람에게 피살된 것이라 주장하여 양국 간의 관계는 결국 국교단절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몽골은 이에 7차례에 걸친 고려침략을 시작
몽고의 침략군들이 함신진을 공격하더니 순식간에 서북지방일대를 유린 하였다. 동년 9월에 마산 초적 괴수 2인이 서북 무신정권의 집권자인 최우에게 스스로 와서 요청하기를 ‘정병 5,000여 인으로 몽고 군사를 격퇴하는데 돕겠다고 하니, 최우가 크게 기뻐하며 매우 후한상을 주었다”고 하며, 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