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사를 준비하며
19C를 전후하여 한반도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다.
1876년 2월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기점으로 갖가지 불평등 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의 자주권을 회복하려는 각계각층의 노력이 있었지만, 정작 자주독립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국왕, 즉 고종황제의 업적에
Ⅱ 대한제국의 성립
평가의 항목은 아니지만, 먼저 고종이라는 인물 자체의 배경이 되는 대한제국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고종이 환궁한 후 독립협회와 일부 수구파가 연합하여 칭제건원을 추진, 8월에 연호를 광무로 고쳤으며, 9월에는 원구단을 세우고, 드디어 1897년 10월 12일 황제즉위
Ⅰ. 머리말
476년 서로마제국의 소멸 이래 극심한 동요가 서유럽을 뒤흔드는 동안 동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공격을 막아내며 제국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6세기를 기점으로 동로마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지배 아래 새로운 문화권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수도인 비잔티움의 명칭을
196년 셉티미우스세베루스황제(193~211)에 의해 폐허가 되었으나, 330년 5월11일 콘스탄티누스황제(324~337)에 의해 수도로 축성되어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렸다. 이때부터 콘스탄티노플은 제국의 정치적인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수도이기도 하였다. 395년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됨으로써 후대인
제국에는 황제만 산다. <고종황제 역사청문회> p36
따라서 민국이념을 지향한다고 해서 근대화를 지향하였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종이 진정한 민국이념을 지향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 근본이 임금과 백성 모두라고 본다면 왜 고종이 집권한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