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어 번역본을 이중 번역한 것이 특히 중요하였다. 아라비아어 산문의 발전에 공헌이 컸던 이븐눌 무카파의 <칼릴라와 딤나(우화집)>나, <아라비안나이트>의 모체인 <천일야화(千一夜話)> 등도 중세 페르시아어 번역본을 9세기 중에 아라비아어로 이중 번역한 것이다.
산스크리트로 된 인도의 천
페르시아어, 컴퓨터 언어와 여행, 스페인어, 영어, 요크셔 방언, 아랍어” 등 10개다. 놀라움과 부러움으로 일단 시작한다. 저자는 외국어를 많이 알면 그만큼 다양한 인생을 살 수 있고, 눈에 보이는 세계의 모습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언어에 대한 호기심과 필요성이 외국어를 배우는 동기라고도 한다.
페르시아어의 비중이 증가했다. 그러나 술탄 후세인 시기에 들어서면 왕조 차원에서 투르크 전통을 지키고자 투르크어 문학을 장려하기도 했다. 또한 티무르 왕조는 페르시아 화풍의 세밀화를 비롯한 회화, 건축, 천문학 등의 발전에도 기여했으며, 술탄 중 한명인 울룩 베그(Olog Beg)는 위대한 천문학자
페르시아어(語)가 먼저 해독되었다. 그 중 롤린슨에 의한 베히스툰의 암석 절벽면에 3개국어로 씌어진 다리우스 대왕의 전승기념비문(戰勝記念碑文)에 대한 해독(1847)은 특히 유명하다. 한편, 1842년 프랑스인 P.E.보타가 아시리아의 수도였던 니네베를 발굴하여 약 2만의 책자로 된 고문서를 발견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