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중에 100만 명이 세례 교인이었다고 전해진다. 나아가 오다 노부나가는 1569년에 기독교 포교를 정식으로 공인하게 되는데 그의 속셈은 불교를 견제하고 포루투갈과 무역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여 대포와 화약 구입을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포르투갈은 유럽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나가
박해로 인해 상당수는 외진 시골로 도망가 비밀리에 자신들의 신앙을 수백년간 지켜나갔으며, 이들은 오늘날의 학계에서 가쿠레 기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 즉 숨겨진 키리시탄(16~17세기 일본의 카톨릭 교도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라 불림
이들은 16세기 서양 선교사들에게 배운 카톨릭 신앙의 요
일본에 거주하는 신부 40명과 수사 73명에게 출국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나가사끼의 교회령을 몰수하여 중앙의 직할령으로 변경시키며 각 곳의 교회당을 파괴시켰다.
그리고 선교활동에 또 하나의 장애요소가 발생하였다. 그것은 1596년 스페인의 배가 해안에 표착하였는데 일본의 관리가 이를 나포하
일본을 발견하며 무역을 하기 시작한다. 포르투갈은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아시아 각국의 분열 상태가 동양 무역을 독점 할 수 있었던 큰 이유였다. 이러한 포르투갈이 거점무역과 포교를 통한 해상 활동이 극동 아시아에 미친 영향이 클 것으로 생각되어 포르투갈이 한국, 중국, 일본에 미친
원시~ 고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포인트
일본인의 사회생활은 토기와 벼농사에서 시작되었다.
일본 열도에 사람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2만 년 전이다. 이 무렵의 사람들은 수렵·채취로 식량을 얻고 동굴에서 살았다. 먹을 수 있는 동물이나 나무 열매가 없어지면 다른 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