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론》의 선분·동굴·태양의 비유, 《티마이오스》의 우주창성론 등). 인간이 탄생과 죽음에 의해서 한계지어진‘이 세상(여기)’과‘저 세상(저기)’의 구별을 플라톤은 이 두 세계를 따로 상대하는 것으로 구상하였고(파이돈, 파이드로스 등), 이 양계를 편력하는 불멸의 영혼에 관한 광채육리한
이데아를 설명하게 위해 이른바 "태양의 비유"를 하게되고 이 인식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단계의 앎의 대상들에 대한 구분을 하기 위해 이른바 "선분의 비유"를 하게 되며, 이를 통해 각각의 지적 대상들에 상응하는 인식 주관의 지적인 상태들에 대한 언급도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치자"의 교육에
국가를 실현시키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기원전 387년 경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아카데미아 학원을 세워 죽을 때까지 제자를 키우고 연구, 저술에 몰두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여기에서 20년 이상 수학하였다고 전해진다. 플라톤은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고 알려져 있다.
플라톤은 가장 위대한 철학 작품을 쓴 사람이며, 희곡작가로서도 천재성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쓴 대부분의 희곡들을 파기해 버렸으며, 지금 남아서 전해지는 것은 철학 저작들뿐이다. 그의 저술은 모두가 대화체로 쓰여져 있는데, 대화의 주인공 소크라테스가 그의 제자들 혹은 다른 소피스
⊙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5세기경에는 소위 '소피스트'가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소피스트'라는 말은 원래 'sophos'라는 말과 'sophia'라는 말에서 유래한 지혜 있는 사람 또는 현명한 사람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소피스트는 하나의 학파로서가 아니라 당시의 개별적 지성인의 총칭으로 이해하여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