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의 권고에 감동하고 동편 언덕으로 끌어내다가 타살한 후에 시체를 그대로 버려서 까막까치의 밥이 되게 하라고 명하니 좌중의 모든 사람이 상쾌하게 여겼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되찾은 사정옥과는 반대로, 간교를 부려 사정옥의 자리를 차지했던 교채란은 죽음으로 죄를 갚는 결말을 맞게
한림학사가 되고, 인품과 성품이 뛰어난 사 소저와 혼인을 하게 된다. 하지만, 구 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자, 사씨 부인은 유 한림에게 첩을 들일 것을 권하여 유 한림은 교채란를 첩으로 맞아들이게 된다. 절세미인이나 성품이 간악한 교씨는 아들을 낳자, 집사로 있는 동청과 사통하면서 정실
현모양처들의 도움으로 살게 된다. 또, 비구니 묘희를 만나 그녀와 함께 절에서 지내게 된다.
한편, 유한림은 교씨와 동청의 고발로 억울하게 유배당하게 되고, 그 공으로 동청은 관직을 얻게 된다. 교씨와 동청은 관직지로 가면서 사씨의 아들 인아를 죽이라고 사씨의 시녀였던 묘혜에게 시킨다.
교씨는 아들을 낳고 유연수의 사랑을 독차지 했지만 사씨도 곧 아들을 낳게 되고, 사씨의 아들 인아가 교씨의 아들 장주보다 건장하여 유한림의 사랑을 많이 받게 되자 교씨는 시비 설매와 유연수의 수하인 동청과 짜고 사씨에게 누명을 씌운다. 사씨를 아끼던 두부인마저 지방으로 가게 되자 교씨는
사대부의 문자였으며, 국문은 피지배층의 언어이자 여성들의 언어였다. 흔히 한문소설은 사대부 남성, 국문소설은 규방의 부녀자의 문예물로 규정되어 있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통 사대부인 서포 김만중이 국문으로 <사씨남정기>를 창작하였다는 것은 무언가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창작하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