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군사정권의 붕괴 후 새로운 모습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는 정치권이 진정으로 그 내면의 모습까지 바뀌었냐 하는 것이다. 문민정부가 탄생하고 5.18 광주 항쟁의 진상규명을 위해 수많은 일들을 했었다. 하지만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1980년 5월18일부터 약 10일간에 광주에
항쟁이었다. 여기에서는 광주5월 민중항쟁의 직접적 배경이 되는 이 기간의 투쟁을 살펴보기로 한다.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상실하고 오직 물리적인 힘만으로 체제를 유지하던, 매우 경직된 권력구조를 갖고 있던 박정희 체제는 1979년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었다. 국내 독점자본이나 한국
Ⅰ. 부마민주항쟁(부마민주화운동, 부마민중항쟁)
1. 당시상황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빚어오다가 7년째에 접어드는 1979년에 들어와 그 한계점에 이르렀다. 이른바 ‘백두진 파동’과 박대통령 취임반대운동으로 시작된 1979년은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연행․체포․
항쟁이라는 패턴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그 운동에서의 대중 참여는 민주화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하고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에 관한 논의 이외에도 운동에서 ‘지도’의 문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운동의 특정지점에서 지도부의 이념적 지향성의 내용과 행동
지도부의 적절한 전략․전술 부재, ‘정 총리사건’ 과 ‘유서대필사건’을 이용한 정부 및 보수언론의 이데올로기적 공세, 중산층의 보수화, 비조직 시민사회와 재야운동의 괴리, 권력대체세력의 부재, 그리고 정치사회의 외면 등을 지적하고 있다. 김윤철 2002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