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황진이의 생애
황진이의 본명은 진(眞)이고, 진이(眞伊) 또는 진랑(眞娘)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녀가 되어서는 자를 명월(明月)이라 하였다. 그녀의 문집이나 연보 등은 전해지는 것이 없으며, 야사나 개인 문집 등 일부 고문헌 황진이 관련 고문헌은 다음과 같다.
황준양(1516~1567)의 「금계
그녀의 모습 옆에 더 이상 착한 여자로 살지 않고 나쁜 여자로 되겠다는 광고카피가 눈에 띈다. 이렇게 어느 순간부터 매스미디어에서는 나쁜 여자가 광고의 메인으로 등장하는 모습은 단순히 광고계에서만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나쁜 여자 신드롬’의 한 단면이라 볼 수 있다
ⅱ. 당시의 평가와 현대의 평가
당대 황진이의 명성은 여러 문언에서 언급되었다. 황진이는 가무음곡에 빼어나고 해박한 상식과 뛰어난 문장력을 갖춰 당대의 재사들과 시문으로 화답하는 명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었으며, 전국의 재사들이 모인 화려한 연회장은 당대의 명기 황명월(황진이의 기명)
문학 창간호는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통일부 실무자가 2호부터는 편집위원회의 자율적인 심사를 통해 발행 여부를 결정하라는 자율성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결국 북한의 황진이는 출판되었다. 북한소설 황진이의 작가는 홍석중이다. 홍석중의 황진이는
황진이’를 통해 황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황진이 열풍이었다. 드라마 속 황진이는 황진이 개인을 넘어선 이른바 기생 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 열풍을 몰아 2007년 영화 ‘황진이’의 개봉은 하나의 트렌드로 성장한 황진이의 인기를 급속히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