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미국과 같은 해양세력들에게 대륙진출의 교두보로서 인식되기도 하고 대륙세력의 팽창을 저지할 수 있는 방파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존재한다. 이에 따라 일본은 미국에 대해서는 인접 아시아를 동원하여 대항하고 러시아, 중국과 인접한 위치에서 보다 유효한 외교적 압력 카드로 활
일본의 독자적인 원자로를 개발, 가동하는 등 국산화 중심의 노선을 과기청 설립시부터 유지해 왔다. 물론, 1950년대의 일본원자력의 여명기에는 미국과 영국 등으로부터 원자로와 원자로 개발기술 등을 수입하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원자력 발전이 궤도에 오른 이후에는 국내개발노선이 과기청의 기
미국, 중국은 물론 일본과 러시아도 한반도 문제에 이해가 걸린 당사자로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6자회담을 통해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한반도의 평화문제가 총망라한 포괄적 해결이 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6자회담의 행방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회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미국의 드리마일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원자로 고장으로 다량의 방사능이 외부에 누출되었다. 이 사고는 압력용기의 파괴에까지는 이르지 않아 경미한 사고로 분류되고 있지만, 발전소 부근 지역에 거주하는 상당수의 주민들이 암과 백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의 도카이촌, 영국의 셀
있어서도 주로 무연탄과 신탄이 주종을 이루던 것을 수입에너지인 석유, 유연탄, 천연가 수에 이어 원자력으로 변천해왔다. 한국은 1955년 미국과 원자력협력협정을 맺으면서 원자력 분야의 연구를 시작했다. 1959년에는 원자력연구소가 발족되었고 1963년에는 연구용 원자로도 가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