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천년의 나일강 주변은 이집트 문명이 대두하고 있었다. 수메르인의 나라가 도시국가의 연대에서 발전한 것과는 달리 이집트는 문자 그대로 국가였다. 이래 3천년동안 고이집트 왕국과 신이집트 왕국의 일시적인 중단은 있었지만, 파라오의 왕정지배는 계속되며 안정된 국가로서 통일을 이루었
1.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세계 7대 불가사의
고대 이집트의 국왕·왕비·왕족 무덤의 한 형식. 어원은 그리스어인 피라미스이며, 이집트인은 메르라 불렀다. 현재 80기가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은 카이로 서쪽 아부 라와슈에서 일라훈에 이르는 남북 약 90 km인 나일강 서안
권력 중에서도 가장 상위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군주 권력에 대하여 살펴보자. 군주 권력에는 두 가지의 특성이 있는데, 바로 책임감과 특권이다. 이 두 가지 특성 중 특권이 책임감보다 우위에 섰을 때 나라는 멸망의 길로 빠질 수 있다.(물론 나라의 멸망은 복합적인 문제들이 누적되어 일어나는 일이
신왕조의 유물과 그레코로만 시대의 유물이 정문 입구에서 시계 방향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2층 전시실에는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과 이집트 신왕조 시대 왕들의 미라 및 기타 유물들이 보존, 전시되어 있다. 선사시대부터 그레코로만 시대까지 총 10만여 점의 유물이 카이로박물관에 전
신왕조로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파라오 왕조
1)고왕조 시기(기원전 2635년~기원전 2140년)
제1왕조의 메네스 왕은 최초의 파라오로서 상·하 이집트를 통합했고, 제3왕조의 조세르 왕은 사카라 지역에 최초의 피라미드(계단식)를, 제4왕조의 쿠푸 왕, 카프라 왕, 멘카우라 왕은 기자에 피라미드를 건축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