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무로 행해지고 마지막에는 대무로 끝을 맺는 식의 절차로 행해졌다.
(Silvester, 1993 ;조미애 1987)
<표2-2http://blog.naver.com/hyunna73?Redirect=Log&logNo=100063774876
영국의 블랙풀볼룸>
18세기의 산업화와 근대화는 댄스를 대중에게 보급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산업화로 인한 대중화는 댄스를 대회로
2인무인 경우가 많아 옆 사람과 짝을 짓기 위해 손을 잡게 되면서 자연히 손의 운동은 제한되고 대신 발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스텝중심의 춤으로 번성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목적으로 전승되고 이어져왔기에 동양무용과 서양무용은 기능적으로 차이를 가지고 있다.
2인무(파드되) 형식을 최초로 만들었고, 솔리스트에서 군무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수학적 계산에 의해 발레 구도를 완성함으로써 '고전발레의 아버지'로 평가받게 된다. {백조의 호수} {호두깍기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돈키호테} {레이몬다} {파키타} {라 바야데르} 등 명작 발레 대부분이 그가 최초
프랑스 태생의 무용가이며 안무가인 마리우스 프티파(1822~1910)가 러시아에 초대되어 황실 발레단의 마스터로 있을 때 만들었으며, 작품 중의 2인무는 후대의 안무가들에게 한 원형으로 인식되어 활용되었다. 프티파는 그가 일찍이 에스파냐를 여행하면서 익힌 그 고장의 춤을 이 작품에서 재현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