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의 발발 혹은 항쟁의 원인에 대한 연구 속에 이미 참여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층 민중이라는 이름 속에 내재해 있는 항쟁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은 맑시즘의 계급개념 만큼 엄밀한 것은 아니지만, 5.18 연구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틀에 따르면 그들은 그 계급에 속하기 때
항쟁은 끝났지만 그 후 청년학생을 비롯한 양심적인 민주인사들과 민중운동에 의해 전두환 일당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움으로서 항쟁의 정당성은 온 천하에 입증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발포 명령자와 공범들에 대한 처벌문제, 사망자와 유가족에 대한 처우 문제 등 처리해
항쟁의 성격과 의의
광주 민중항쟁의 물적 기초는 해방이후 제국주의, 파시스트 권력과 결탁하며 대외의존적 자본 축적을 가속화시킨 종속적 독점 자본의 민중 수탈적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광주 민중들은 이러한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였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독재를 대비시키면서 제
1. 서론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아픈 상처가 있다면 바로 5 18 광주 민중항쟁일 것이다. 과거 위정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광주사태」라 불리울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은 5 18 광주 민중항쟁은 사건의 핵심 책임자인 전직 두 대통령이 재판에 회부되었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