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과 현 금융위기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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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공황과 현 금융위기 비교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들어가며

2. 1930년대 대공황

3. 미국 발 금융위기

1) 금융위기의 원인

2) 금융위기 전개상황

3)전망

4. 나오며

본문내용
2) 전개상황: 대공황 발생 1년 만에 미국에서는 744개의 은행이 파산했고 이후 10여 년간 파산은행 수는 총 9000여개로 늘어났다. 1933년까지 4년간 은행파산으로 예금자들이 잃은 돈은 1400억 달러에 달했고 소비가 급감하면서 기업들도 잇달아 문을 닫았다. 1933년 미국의 실업률은 25%를 기록했고 2차대전 전까지 두 자리 수를 유지하게 된다. 1932년 미국의 국민총생산(GNP)은 1929년의 절반으로 떨어졌으며 1940년대 초까지도 1929년의 수준을 회복되지 못한다. 또한 금본위제도 축소로 인한 통화 공급 감소가 불황 심화와 장기화를 초래했다. 본원 통화는 안정적인 추세임에도 금융위기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와 정보비대칭성 문제 심화로 민간의 현금보유량이 증가하고 은행도 예금인출 사태 대비 초과 지급률을 높임으로써 통화 공급이 급감하고 유통속도도 하락했다. 결국 통화 공급이 감소하는데도 아직 시행중인 금본위제 때문에 본원통화를 신축적으로 운용하지 못하여 불황이 공황으로까지 악화되고 만다. 또한 주가폭락에 따른 은행 투자 손실 급증, 기업부도의 증가에 따른 부실여신 증가, 은행도산 급증 등으로 신용 경색이 심화되었다. 은행의 도산은 금융기관 대출 감소로 이어져 생산 활동과 생산능력 위축을 초래하여 총 공급 감소효과를 낳게 된다. 또한 신용위험 및 대손충당금 적립지용 증가 등으로 예대금리차가 커지고 금융 중개비용 증가하여 소비/투자 수요 위축을 초래함으로써 총 수요 감소효과도 낳게 됐다. 이러한 대공황의 쓰나미는 유럽과 아시아, 남미 등 전 세계로 이어지면서 각국의 경제를 흔들었다. 특히 미국의 차관으로 경제 재건을 진행하던 독일에게는 치명타를 입히게 되며 각국에서 실업률이 치솟고 경제가 몰락하면서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이 세력을 강화하게 됐다. 대표적인 예로 1933년 1월에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3) 해결방향:
이름 (한글)
창설년도
폐지년도
폐지사유
비고
재건재정공사 (RFC)
1932/1933
1957
기능청산
자금유동성확보
비상은행법령
1933
1933
글래스-스티갈법
은행감독
글래스-스티갈법
1933
1980
연준권한강화필요
FDIC 설립
1차농업조정법 (AAA)
1933
1936
위헌판결
농업물가조정
민간토목단 (CCC)
1933
1942
2차세계대전
공공근로
테네시시설공단 (TVA)
1933
n/a
현재까지존재함
테네시주개발
노동진흥청 (WPA)
1933
1943
2차세계대전
공공근로
연방응급구호국 (FERA)
1933
1935
기능이관 – WPA/SSA
실업대책
공공근로국 (PWA)
1933
1941
2차세계대전
공공근로
전국산업회복법 (NIRA)
1933
1935
위헌판결
산업회복/규제
민간근로국 (CWA)
1933
1934
타프로그램과기능중복
공공근로
농민보호국 (FSA)
1935
1943
2차세계대전
농민이주/정착
사회보장법 (SSA)
1935
n/a
현재까지존재함
사회보장제도
전국노동관계법 (NLRA)
1935
1947
태프트-하틀리법
노조/단체교섭
2차농업조정법 (AAA)
1938
?
?
농업생산조정
미국에서는 이의 극복을 위하여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케인즈의 경제이론에 입각해 시장에서의 정부 기능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 나간다. 국가에 의한 유효 수요의 창출, 완전 고용, 금본위제를 대신할 관리통화제도를 주창한 케인즈 정책은 은행과 투신 업무를 분리하고 증권거래법 제정과 증권거래위원회(SEC) 설립을 통해 불건전거래를 적극적으로 차단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뉴딜' 정책은 루스벨트 정부를 대표하는 경제 활성화 대책이다. 재기 가능한 은행에 긴급 자금을 제공하고 금본위제를 폐지하는 대신 관리통화법을 도입해 정부의 통화규제력을 강화했으며 농산물의 가격 안정에 나섰다. 또 기업간의 과도한 경쟁을 억제해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는 한편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테네시강 유역개발사업을 통해서는 지역개발과 전력생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미국과 전 세계가 대공황의 늪을 빠져 나오기에는 10년 이상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미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은 것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부터였고 다우존스지수는 1954년이 돼서야 1929년 당시의 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 미국은 이 케인즈 정책을 일부 도입한 뉴딜 정책을 취했으나, 세계의 대세는 영국의 스털링 특혜제도 성립을 기회로, 세계무역의 블록화 블록 경제(Bloc economy): 몇 개의 국민경제를 하나의 지역(블록)으로 통합해 타지역에 봉쇄적인 무역정책을 취하는 경제권(經濟圈). 당시 공황의 여파와 국제금본위제의 붕괴는 세계 여러 나라를 통화권별로 분열시켜 파운드 블록, 달러 블록, 마르크 블록, 프랑 블록, 원 블록 등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각각 열강을 중심으로 경제권을 형성하면서 세계 경제의 분단을 지향하고, 차별관세·구상무역·수입통제·외환관리 등의 정책으로 역내의 자원과 시장에 대한 배타적 지배를 강화했다.
와 그것에 대항하는 파시즘화·국가독점자본주의화를 탄생시켰으며, 따라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준비하는 경향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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