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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584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체육행정가로서의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안진규 ( An Jin Kyu ) , 김재우 ( Kim Jae Woo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6] 제21권 제3호, 13~26페이지(총14페이지)
본 연구에서는 체육행정가로서 보여준 여운행의 발자취를 살펴보았다. 여운형은 중국 상해 체재 시절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민족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한인 체육단체를 조직하여 각종 체육 사업을 전개하는 등 체육행정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귀국 후 각종 체육단체의 임원으로 취임한 여운형은 탁월한 행정능력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던 체육단체들의 사업을 정상화시켰고, 체육활동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던 여성들의 체육 장려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여운형은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에 조선이 태극가를 들고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기까지 제11대 조선체육회장과 초대 조선올림픽위원장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와 같이 여운형이 보여준 체육행정가로서의 지도력과 역량, 그리고 활동력은 길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TAG Lyuh Woon-hyung, Physical Education Administrator, Athletic Organization
여운형(呂運亨)과 체육인들의 건국치안대에 관한 연구
조준호 ( Cho Jun Ho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6] 제21권 제3호, 27~43페이지(총17페이지)
본 연구는 체육인 여운형을 살펴보고 그가 주도한 건국치안대의 체육인 활동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여운형과 건국치안대의 체육사적 업적을 기리고 그들이 한국체육발전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 연구목적이다. 하나, 여운형은 체육과의 인연이 특별했고 조선중앙일보 사장과 첫 조선체육회 회장을 역임하며 조선의 올림픽 출전을 가능하게 하는 등 한국체육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둘, 광복 직후 건국치안대의 조직에는 1942년부터 여운형의 앞선 지시가 있었고 1944년 건국동맹은 그 기틀이 된다. 결국 광복 다음날인 1945년 8월 16일 건국치안대가 조직되었고 61%이상의 체육인들이 단체에서 제 임무를 수행하며 활약한다. 건국치안대는 9월 5일 경 인공의 출현과 미군정이 시작되며 해산한다. 그들은 체육인 본연의 업무로 돌아갔으며 이를 위해 여운형은 조선체육회의 ...
TAG Nation Building Security Force, Yeo Un Hyung, Chosunjoongang-ilbo, Chosun Athletic Association
신문기사를 통해서 본 권태하의 마라톤 인생사
박귀순 ( Park Cindy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6] 제21권 제3호, 45~63페이지(총19페이지)
본 연구에서는 신문기사에 보이는 권태하의 생애와 그의 마라톤 및 다양한 스포츠 활동 등 그의 마라톤 인생을 통해서 체육사적 가치를 밝히는데 목적을 두었으며,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관련된 자료를 보완한 문헌고찰을 채택했다. 그는1906년 충청북도 충주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서울 중동학교를 거쳐서 메이지대학과 미국 남가주대학교 체육학 전공을 거친 엘리트 스포츠 재원이었다. 그는 1932년 LA올림픽 파견 조선과 일본 선발전에서 각각 우승을 했으며, 올림픽에서 부상 투혼을 펼친 끝에 9위를 했다. 그는 LA올림픽이 끝난 후에 미국 남가주대학교에서 크롬웰 코치의 지도하에 새로운 과학적인 마라톤 코칭법과 훈련법 등을 배우며 체육학을 전공했으며, 귀국 후에 선수, 마라톤지도자, 스포츠 행정가로서 활동을 했다. 그의 마라톤 인생을 통해서 살펴본 체육사적 가치...
TAG Marathon life of Kwon tae-ha, Marathoner, Pioneer and Coach of Korean Marathon, Sports Administrator
프로야구단 현대 유니콘스(Hyundai Unicorns)에 대한 구술사적 연구(1995부터 1999년까지)
김지영 ( Kim Ji Young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6] 제21권 제3호, 65~78페이지(총14페이지)
본 연구는 한국프로야구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과정과 활동을 통해 그들이 한국프로야구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았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는 한국프로야구 팀을 창단하려고 하지만 기존 구단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업야구팀 현대 피닉스를 창단한다. 현대피닉스를 창단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망주선수들을 대거 스카우트한다. 이후 아마야구계를 점령한 현대는 야구계의 새로운 실력자로 나서게 된다. 둘째, 현대는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프로야구팀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했다. 현대 유니콘스는 선수들과 코치들에게 타구단에 비해 연봉과 복지까지 최고의 대우를 해줬다. 그리고 현대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영업능력과 경쟁력이 다른 구단과는 차별화 되어 있었다. 셋째, 현대 유니콘스는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IMF로 재정 위기를 맞은...
TAG Hyundai Unicorns, Hyundai Phoenix, Korean professional baseball, Oral History
연산군의 신체활동과 취미,오락 및 놀이가 국가와 백성들에게 미친 영향
이태웅 ( Tae Ung Lee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6] 제21권 제2호, 1~18페이지(총18페이지)
본 연구는 15세기 조선의 제10대 왕인 연산군이 국정운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했으며, 과도한 신체활동과 취미ㆍ오락 및 놀이가 국가와 백성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연산군은 시를 잘 짓고, 말도 잘타는 등 예ㆍ체능에 두루 능했는데, 충격적인 폐모의 죽음과 국정운영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과도한 신체활동과 유희ㆍ오락 및 놀이에 탐닉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백성들에게 커다란 폐해로 돌아갔고, 중종반정의 단초를 제공했으며, 결국 왕위에서 축출되어 강화도로 유배되는 계기가 되었다. 연산군의 과도한 신체활동과 유희ㆍ오락 및 놀이로 인해 첫째, 연산군은 국정을 등한시하였으며, 둘째, 국방력이 약화되었고, 셋째, 학문의 발달이 더뎌졌으며, 넷째, 국고를 낭비하여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
TAG Chosun Dynasty, King, Yeonsan, physical activities, hobbies, amusements and games
구한말 근대스포츠의 도입과정에 관한 연구
손환 ( Hwan Son ) , 하정희 ( Jung Hee Ha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6] 제21권 제2호, 19~29페이지(총11페이지)
본 연구는 구한말 근대스포츠의 도입에 대한 실태를 재검토하는데 있다. 구한말의 근대스포츠는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이후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과 미국, 일본으로부터 근대적인 신문화와 함께 도입되었다. 이들 근대스포츠는 주로 외국인들에 의해 도입되었는데 학교를 통해 과외활동과 대항경기, 그리고 스포츠단체의 활동을 통해 일반사회에 보급되면서 근대스포츠로서의 체제를 갖추었다. 그중에서 자전거는 생활에 필요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도입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본 연구를 통해 구한말의 근대스포츠는 실제로 언제, 누구에 의해 도입되었는지 그 경로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이유는 그동안 한국체육사연구의 부진한 성과와 새로운 자료발굴의 노력이 미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TAG last period chosun dynasty, korean modern sports, introduction process
일제강점기의 "인천체육회"에 관한 연구
조준호 ( Jun Ho Cho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6] 제21권 제2호, 31~47페이지(총17페이지)
본고는 일제강점기 인천에서 활약한 인천체육회에 관해 알아보고 체육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천체육회는 산수정공회당에서 1936년 1월 11일 오후 8시경 창립한다. 인천체육회의 창립 이유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조선인의 체육 통제기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성장기 인천체육회는 다양한 스포츠를 전개하며 전조선씨름대회, 전인천축구대회, 전인천농구대회, 중조선축구대회, 전인천빙상대회, 전조선궁술대회 등을 개최하였다. 뿐만아니라 인천체육회는 럭비대회, 자동차대회 등도 개최하며 새로운 스포츠에 대한 인천 부내의 저변확대에도 힘썼다. 셋째, 인천체육회는 1939년 말까지 활발한 활동을 선보였으나 부내의 최고 권력자인 영정부윤(永井府尹)의 강압에 의해 폐쇄된다. 인천체육회는 일제강점기 스포츠를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한 ...
TAG Incheon Sports Council, Improved rapidly, Korean athletic association, National spirit
한국 최초 권투 세계 챔피언 탄생의 역사적 의미
이종성 ( Jong Sung Lee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6] 제21권 제2호, 49~61페이지(총13페이지)
본 연구는 1966년 한국 최초의 프로권투 챔피언의 탄생으로 비롯된 스포츠 민족주의의 발전과 TV 스포츠 중계 시대가열린 시점에 등장한 상업적 스포츠 이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 목적이다. 박정희 정권 하의 1960년대는 적극적으로 엘리트 스포츠 발전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던 시기로, 이 때 권투 세계 챔피언 탄생을 포함한 스포츠 부문에서의 쾌거를 목도할 수 있었다. 이는 박정희 정권이 지원한 스포츠 민족주의 발현이 성공적이었다는 점을 의미했다. 특히 권투 영웅김기수의 탄생은 생중계를 포함한 미디어의 보도에 힘입어 당시 그 어떤 스포츠계의 쾌거이상으로 강력한 대중적 파급효과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또한 이 승리는 권투 경기를 주요한 TV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했으며 스포츠와 관련된 광고의 등장을 이끌...
TAG Park Chung Hee Sports nationalism, Boxing, Kim Ki Soo, Commercialism
서울올림픽 개최 반대여론에 대한 사회문화적 고찰
박경호 ( Kyoung Ho Park ) , 옥광 ( Gwang Ok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6] 제21권 제2호, 63~75페이지(총13페이지)
본 연구는 서울올림픽 개최에 대한 반대여론의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조명하고 또 다른 측면에서의 개최 의미를 평가해보고자하는데 목적이 있다. 반대여론과 관련된 1, 2차 자료에 대한 문헌고찰을 실시했으며 상호주관적 논의의 방법을 통해 연구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개최비용과 관련된 반대여론은 경제적 수준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반영되지 못한 유치 계획에서 비롯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높은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한 ‘대중의 채찍’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둘째, 남북관계에 기인하는 개최 반대여론은 북한의 공동개최 요구에 의해 발생했으며 국제사회의 여론이 일관되게 지지해 준 것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사회적 분열을 야기하기도 했다. 셋째, 도시개발과 관련된 반대여론은 ‘올림픽에 대한 반대’보다는 ‘올림픽으로 ...
TAG Seoul Olympics, opposition opinion, hosting the Olympics, mega-sports events, media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1991) 코리아 단일팀참가에 관한 연구
이현우 ( Hyun Woo Lee ) , 김재우 ( Jae Woo Kim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6] 제21권 제2호, 77~93페이지(총17페이지)
본 연구에서는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코리아 단일팀 참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남과 북은 통일축구대회 개최를 계기로 이루어진 남북체육회담을 통하여 단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하기로 합의하였다. 남과 북은 서울과 평양에서의 평가전을 거쳐 18명의 선수를 선발하였고, 평양과 서울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였다. 62명으로 구성된 선수단은 서울에서 결단식을 갖고 포르투갈로 출발하였다. 코리아 단일팀은 포르투갈에서의 전지훈련과 평가전을 통하여 전력을 최종 점검하였고, 대회에 참가하였다. 코리아 단일팀은 객관적인 전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1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세계 8강 진입에 성공하였다. 코리아 단일팀의 참가는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 한민족의 저력과 자긍심 발휘 등 긍정적인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단일팀 구성 과정 속에서의 북한 측에 대한 일방적인 양보, 선수단 임...
TAG the 6th FIFA World Youth Championship, Korean single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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