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시대 동아지중해에서의 교역활동과

 1  남북국시대 동아지중해에서의 교역활동과-1
 2  남북국시대 동아지중해에서의 교역활동과-2
 3  남북국시대 동아지중해에서의 교역활동과-3
 4  남북국시대 동아지중해에서의 교역활동과-4
 5  남북국시대 동아지중해에서의 교역활동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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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국시대 동아지중해에서의 교역활동과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언
2.장보고를 비롯한 재당신라인
3. 발해의 해상활동
4. 8~9세기 해상활동의 21세기적 의미
본문내용
1. 서언
남북국시대 동아지중해의 교역활동은 크게 몇 가지 루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신라와 당의 교역로가 그 첫 번째이며, 그 첫 번째 루트의 주체가 되는 ‘재당 신라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보고’ 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도록 할 것이며 두 번째로 발해와 왜와의 교역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하고, 그 두 가지의 예를 들어볼 때, 현재, 그리고 앞으로 미래의 눈으로 이 교역 활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2.장보고를 비롯한 재당신라인
첫 번째는 동아지중해의 교역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재당신라인이다. 재당 신라인이라 함은 단지 당에 살고 있는 신라인을 뜻하는 것일까? 그 정도로만 보기에는 범주가 너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유민이 된 고구려나, 백제의 유민들까지도 이 ‘재당신라인’에 포함 시키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 사람들이 나는 백제인이야! 혹은 고구려인이야! 하는 아이덴디티(ID)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나라 사람들은 그들은 신라인이라고 보고 역사서등에 기록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삼국통일 이후에 신라와 당과의 관계가 전쟁 등으로 그다지 좋지 않았을 때에 활동했던 -제나라를 세운 이정기 같은- 인물 역시도 고구려인이야! 라기보단 좀더 큰 범주의 신라인-중국의 눈으로 보아 협의의 東夷와 거의 일치되는- 으로 보는 것이 앞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데에 편하지 않을까 한다. 동아시아는 -앞서 레포트를 내기는 하였지만- 교수님이 말하고 계시는 ‘동아시아의 국제대전’의 결과로 ‘당’중심의 일원적인 세계를 재편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분쟁보다는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자명한 일이며, 그리하여 국가간의 교역또한 대단히 활발해 졌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 경제체제의 기반이 되는 물류체제에는 한계가 있었다 생각되는데 서역에서 오는 물건들은 수도인 장안 이상으로는 퍼지지 못하였으며 해양실크로드의 종착역은 광주, 혹은 영파 정도 였다. 그리하여 당 내부에서 그러한 물건들을 수송하는 성격의 상인들이 나타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바로 ‘재당신라인’ 이라는 계층이었다는 것이다. 당이 동아시아의 중심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의 그들의 생존 방법은 ‘경제권’의 장악 이었을 것이며 최근에 말하는 ‘틈새시장’을 적절히 공략하여 성공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라방, 신라소, 신라촌 등은 그들의 정착촌이었다. 유민계층은 그쯤에서 만족하지 않고 국제무역을 하는 대상인으로서 발전을 꿈꿨다. 그리하여 본국 신라인의 도움을 받아 중국 각지에 신라방을 건설하고 중국→신라→왜 의 국제 상권의 중심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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