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무로마치바쿠후의 수립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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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무로마치바쿠후의 수립과 발전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카마쿠라막말의 혼란
2. 실정막부의 수립과 발전
3. 무로마치바쿠후의 쇠퇴
4. 실정막부의 문화
본문내용
1. 카마쿠라막말의 혼란

1) 겐무(건무)신정 : 막부가 몰락한 후 이전의 셋간(섭관)정치 인세이(원정)가 폐지되고 고다이고(후제유호)천황의 과도적 천황친정체제 성립 (건무중흥 : 1333~1336). 여러가지 신설제도를 확립하고 공가ㆍ무가의 양측에서 인재를 등용하는 등 공무합체를 이상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를 핌. 그러나 막부가 인정해준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하지 않는 등. 시대착오적인 정책으로 신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겨우 2년만에 붕괴함.
2) 남북조의 동란 : 아시카가 타카우지(족리고씨)가 다시 천황체제에 반발, 친정체제를 무너뜨리고 경도를 장악. 자신의 지위를 합법화하기 위해 대립하고 있던 천황의 두 계통 중 지명원 계통의 고오묘(광명)천황을 추대. 이에 대해 대각사 계통의 고다이고천황은 요시노(길야)에서 독자적으로 천황위를 주장. 이로써 남조의 고다이고천황(길야)과 북조의 고묘천황(경도)이 분립되는 남북조 시기(1336~1392)로 접어듬.
3) 남북조 통합.
- 1339년 고다이고천황의 병사 병사.
- 1392년 남조 천황이 북조 천황에게 양위하는 형식으로 남북조의 통합이 이루어짐. 1336년 이미 시작한 아시까가 다까우지에 의한 무로마치막부가 비로소 명실상부한 통일을 이룸.(교토의 실정에 막부를 둠) 북조의 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짐.

2. 실정막부의 수립과 발전

1) 바쿠후의 수립과 안정 : 경도를 장악한 족리고씨가 1336년 (겸창막부의 정영식목을 모방한) 건무식목 17조를 제정하고 막부를 염. 남북조 혼란기에 성립하여 초기에는 내분이 잦았다가 아시카가 요시미츠(족리의만) 때 전국적 지배권을 확보.
2) 실정막부의 통치구조
⑴ 중앙 : 카마쿠라막부가 싯겐(집권)의 전제정치였던데 반해, 무로마치막부는 쇼군(장군)이 정점에 위치하면서 슈고(수호)들이 그 보좌책으로 중앙정부의 고관이자 지방의 군사적 통치자로서의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함.
① 깐레이(관령): 최고 행정장관으로 보통 시바(사파), 하타케야마(백전산), 호소가와(세천)의 세 유력가문에서 나오게 됨. 이들 가문을 삼관이라 부름.
② 사무라이 도코로(시소): 깐레이 밑의 요직으로 군사계획, 경찰․치안 활동 등의 역할을 맡음. 이들도 유력한 네 가문 산명등에서 선임됨 (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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