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등장] 전후 노동당 정부의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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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 노동당 정부의 집권

복지국가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에서 노동당 정부의 집권과 함께 출현하
였다. 당시 총선은 전시 거국 내각의 성립 이후 10년 만에 이루어지는 선거였는
데, 이 선거에 대해 전 세계의 연론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의 세계적인 영웅인
윈스턴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의 압승을 예상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놀랍게도 애
틀리의 노동당 승리였다. 애틀리 노동당 정부는 1951년 총선에서 패해 보수당에
게 정권을 내줄 때까지 베버리지보고서를 바탕으로 6년 동안 복지국가의 골격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노동당이 집권하게 되는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자.
1944년 아직 유럽에서 전쟁이 한창일 때 노동당은 종전이 되면 즉각적으로 연
정에서 물러나 독립된 당으로서 총선에 임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1945년 5월 전
쟁 막바지에 연정을 지속할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당의 반 토리 정서1)는
점차 강화되고 있었다. 애틀리, 베빈 등 노동당 지도부는 전후 총선에서 국가적
영웅인 처칠을 이길 수 없다고 보아 종전 후 국가재건 기간까지 연립정부를 지
속시킬 생각이었다. 그 무렵 처칠이 이런 제안을 했을 때 애틀리와 베빈은 수용
하려 했다. 그러나 당 집행위원회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보수당은 전쟁영웅
으로서의 처칠의 명성을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조기 총선을 추진했고, 연정은 끝
났다. 당 지도부의 불안 속에서 여름부터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6월 총선의 결과는 예상 밖의 대승리였다. 충선에서 노동당은 393개의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며 집권에 성공하였다. 보수당은 213석에 불과했으
며, 기타 정당이 34석이었다. 득표 수로는 노동당이 47.8%, 보수당이 39.8%를 기
록하였다. 이런 압승으로 노동당은 창당 후 처음으로 단독 정부를 구성할 수 있
었다. 영국의 유권자들은 종전 후 일종의 뉴딜을 원했다. 그것이 노동당의 복지
정책이었던 것이다(Hinton, 1983 : 168; Cole, 1948 : 464-465).
그런데 이상과 같이 노동당이 예상 밖의 대승리를 거두어 집권에 성공할 수 있
었던 것은 바로 계급관계의 변화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애틀리의 복지국가는
노동자계급의 힘의 증대,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 간의 복지동맹(welfare coalition),
자본의 복지국가에 대한 암묵적 수락의 결과라는 것인데, 이런 중대한 변화는 바
로 전쟁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선 노동자계급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 전전의 대공황기에 엄청난 실업과
실질임금의 하락을 경험한 노조는 급진적 요구 대신 적절한 국유화(사적 소유하
본문내용
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줄 수 없는 산업에 한해 국유화하는 것), 완전고용, 복지정책의 확대 등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실현 가능한 것을 요구하기로 입장을 바꾸었다. 노동당 역시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실현 불가능한 강령 대신 재분배
를 통해 자본주의의 부정적 결과들을 완화시키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이
는 곧 노조와 노동당이 복지국가라는 매개를 통해 자본과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김영순, 1996 : 80-83). 이런 점에서 Cole이 지적한 대로 전후의 노동당 정책은 사회주의적(socialistic)이었지 사회주의(socialism)는 결코 아니었다(Cole, 1943 : 465).
그리고 전쟁은 중간계급의 태도도 변화시켰다. 전통적으로 중간계급은 노동시
장에서의 자신의 유리한 지위 때문에 자조의 신념을 지니고 있었으며, 국가복지
는 자신들의 부담으로 운영될 뿐만 아니라 그 대상에게 의존심을 조장한다
하여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전쟁은 이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위험을 안
겨 주었고, 전시의 국가통제에 익숙해졌으며, 보편적인 국가복지가 자신들에게도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어 복지국가를 수용하게 되었현 것이다. 해
서 이들은 전후 애틀리의 노동당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곧 중간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복지동맹이다(김영순, 1996 : 83-85).
사실 중간계급이 노동당을 선택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간계급
의 지지 없이 노동자계급 유권자들만으로 노동당이 승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
다. 전통적으로 자유당이나 보수당 지지자들이었던 이들 중간계급은 장기간의
전쟁생활에 지쳐 보수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종전 후의 새로
운 개인의 자유와 가족생활을 염원했다. 다시는 전쟁에 휘말리기 싫어했던 것이
다(the spirit of 'never again').
전쟁은 끝났으니 애제 시민들에게는 전시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 전친 사회문제가 더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총선은 지난 20년간의 불행에 대한 심판이었고, 선택받은 쪽이 노동당이었던 것이다(Jones, 1991 : 123).
*참고문헌

- 원석조(2005). ‘사회복지정책론’. 공동체.

- 김연명(2002).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 인간과 복지.

- 최경구(1993). ‘조합주의 복지국가’. 한나래

- 하상락(1989). ‘한국사회복지사론’. 박영사

- 김수행(1988). ‘정치경제학원론’. 한길사.

- 김상균(1987). ‘현대사회와 사회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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