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하는 것은 무모하고 매우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정말이지 사람들이 모이고 회합을 갖는 것에 관해 그것이 교회의 목적에 부합하고 있는가를 자주 물어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단체나 또는 사회의 무슨 클럽 같은 것으로 전락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그 점으로 보아 교회 자체의 문제를 제기하는
노래에서 자아와 세계가 동질화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은 '자아화'로 나타나지만, 자아의 능력으로 그것이 가능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자아의 능력을 초월하여 있는 곳에 불교의 종교적 질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월명사가 죽은 누이와 재회를 기약하는 '미타찰'은 월명사의 실천적 능력으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