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에서 이미 미군 2개 사단 철수가 이뤄진 상태에서 1954년 말까지 4개 사단 추가 철수를 통보받는데 귀국 후 철수와 관련한 반미 캠페인 전개
- 미국은 이승만의 비타협적 태도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모든 경제원조 중단, 공식적 외교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최소한의 접촉만 유지, 군사
회담이 제네바에서 개최(1994.7.8) 되었다. 그러나 미․북 제네바회담은 개최 하루만인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연기되었으며, 아울러 예비접촉을 통해 준비해 오던 남북 정상회담도 무기 연기되었다.
남북정상회담이 비록 실현되지는 못하였으나, 한국정부는 “북한이 핵 투명성을
회담을 요구한 미국의 바램대로 2003년 8월 27∼29일, 중국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6자회담은 기본적으로 북한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담이다. 그러나 냉전 초기에 발발한 6.25전쟁 직후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목적으로 1954년 제네바정치회담이 개최된 이후 반세기만에
북핵문제는 탈냉전 이후 국제사회에 전면적으로 부각한 문제이다. 북핵문제는 형식적으로는 냉전 미 종식 국가의 공산주의 체제유지를 위한 국내문제의 국제화라는 ꡐ원자력 외교ꡑ의 모습을 띠지만 실재적으로는 탈냉전 이후 미국의 세계질서 재편과 관련된 한반도의 통일문제 및 동북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