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입법을 관통하고 있던 것이었음에도 실제로 조선 초기에 해당하는 세종대부터 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원칙을 다시 수정하여 말한다면 <양법미의>도 새로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 아래에서는 극히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것이었고 따라서 법전의 권위는 그 법
조선경국전><경제 문감>에 이어 조준은 조례를 모은 <경제육전>을 만들었고, 태종 때에는 이것을 다시 개정 증보하여 <속 육전>을 만들었으며, 세종 때에는 <육전 등록>의 완성을 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세조 때에 이르러 이미 만들어진 여러 法令과 교령을 종합하여 항구적인 법전을 마련해야 한
Ⅰ. 개요
유교는 조선조 500년 동안 한국인들을 규율하는 규범으로서 이용되었고, 아직도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와 행태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면 유교의 가족주의는 명절 때만 되면 한국인들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귀성전쟁이라고까지 불리는 교통 혼잡을 무릅쓰고 고향을 찾아가게끔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