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펴 보기 위해서는 歷史를 상고하는 것이 최선이다.
聖君 世宗이 주도한 15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는 민족의 자부심이어야 한다.
야비하고 상스러운 무익한 글자를 만들어서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이적(夷狄)과 같아지려 하는가!
부제학 崔萬理, 직제학 辛碩祖,
응교 鄭昌孫, 부교리 河緯地 등.
慶尙道의 성립
『慶尙道地理志』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三韓을 통합하고 비로소 東南海道部署使를 두었다고 하였으며, 그 후에 慶尙晋安東道, 慶尙州道, 慶尙道 등으로 각각 고쳤으나 그 개칭의 연대는 미상이다”고 하였다. 그 개칭의 연대에 관해서 『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대략 아래와 같이
世宗實錄地理志)등에 전하고 있다.
이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특히 고려시대에 이르러 민족통일의 과업이 추진됨에 따라 민족의 공동 조상으로 등장하게 되고, 조선 세종 때에 이르러 평양에 사당을 지어 고구려 시조 동명왕과 함께 조상신으로 모시게 됨으로써 한국 민족의 시조로 숭앙받게 되었다
世宗實錄地理志)』 및 『규원사화(揆園史話]』에 전한다. 단군신화는 한국문학, 특히 서사문학의 원형이 되어 여러 가지 형태로 계승되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단군신화에 나타난 한국 서사문학의 원형 네 가지
천상계와 지상계의 설정지상계를 중심으로 이야기 진행. 지상국 건설의 현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