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의 곳곳에서 드러나 있듯이 사마천의 글에는 그의 자유분방한 기질이 진하게 녹아 있는데, 이는 어린 시적의 성장 배경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20세가 되던 해 사마천은 길고도 먼 여행을 떠난다. 이 역시 아버지의 조언과 도움에 의한 일이었다. 그는 여항을 하면서 역사에 기록된
사기(史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정도에 의존할 수 있을 뿐이다. 우선 《사기》에는 노자의 출생과 삶의 행적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 여향(?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다. 성은 이(李)씨이고 이름은 이(耳)이며 자는 담(?)이다. 주(周)나라 수장실
1. 상군열전(商君列傳)
- 상군은 위왕의 공자 중 1인으로 이름은 공손앙. 위의 재상인 공숙좌를 섬겨 중서자가 됨 → 공숙좌는 죽을 무렵 후임으로 상군을 추천하고, 그를 기용하지 않을 경우 죽이라 청함 → 위왕은 상군을 등용하지도 죽이지도 않음
- 상군은 진으로 건너가 어진 이를 구한다고 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