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지원과 열하일기(熱河日記)
(1) 박지원의 생애
박지원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 중미(仲美), 호 연암(燕巖)으로서,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여의고 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를 지낸 조부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다. 16세가 되면서 조부가 죽자 결혼, 처숙(妻叔) 이군문(李君文)에게 수학, 학문 전반을 연구하
敦寧府) 주부(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行 集賢殿) 부수찬(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 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
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行集賢殿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臣) 등이
敦寧府)·훈련원(訓鍊院) 등에 소속된 종3품 관직을 말한다.
을 지낸 정세소(鄭世紹) 정세소(鄭世紹):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효원(孝元)이다. 1516년(중종 11) 별시 병과에 합격하여 부사(府使)를 지냈다.
의 아내로서 절부(節婦)로 정려문이 내렸다. 일찍이 언니가 『방씨여교』(方氏女敎) 방씨여교(方氏
敦寧府知事)를 지낸 조부 슬하에서 자랐으며, 1752년 16세 때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하였고 그 후 장인과 처삼촌에게 <맹자>와 <사기(史記)>를 배웠다. 22세 때 부터 박제가, 유득공 등 당대 실학을 공부하던 이들과 교우하여 영향을 받았으며, 30세 때는 실학자 홍대용(洪大容)과 교우하여 서양의 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