盛京雜識)
성경잡지(盛京雜識)는 열하일기 제2권으로 7월 10일부터 7월 14일까지 모두 닷새 동안의 기록이다.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까지 5일간의 기록으로 3백 27리길의 여정을 다루었는데 성경(盛京)은 요양에서 십리하일(十里河日), 백탑포(白塔鋪)를 거치면 당도하는 지역으로 소흑산까
盛京) -> 산하이관[山海關] ->연경(燕京) ->열하(熱河) -> 연경(燕京)
6월 24일 압록강 국경을 건너는 데에서부터 시작하여 요동(遼東) ·성경(盛京) ·산하이관[山海關]을 거쳐 연경(燕京)에 도착하고, 열하로 가서, 8월 20일 다시 연경(燕京)에 돌아오기까지 약 2개월 동안 겪은 일을 날짜 순서에 따라 항목별
盛京으로 개칭하였다.
2) 皇太極의 繼位와 국호의 改稱
누르하치가 세상을 떠나자 막내로서 여덟째 아들인 黃太極(Hong Taiji)이 繼位하여 ‘칸(汗)’이라 칭하고 연호를 天聰이라 하였다. 당시 후금과 접해 있는 조선이 친명정책을 펴고 있어 후금이 中國으로 진출하는데 큰 장애 요인이 되었다. 이에 皇
.
이로서 후금은 배타적인 국수적인 만주족 국가라는 성격을 탈피 한족과 몽고족을 적극 포용하는 다민족 국가로서 군주 독재하의 관료국가체제를 이끌어 나갔다.
1635년 이듬해 국호를 청淸이라하고 연호를 숭덕崇德이라 고치고 심양을 도읍으로 정하여 성경盛京이라 했는데 그가 바로 청 태종이다.
盛京雜識) : 수레, 우물을 다루면서 조선의 사회를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봄. 또한 사신들의 대화 중 존명배금을 비판하는 내용에서 당시 조선 사대부들의 모순을 찾아볼 수 있음.
3) 일신수필(馹汛隧筆) : 춘추 대의론에 대한 회의와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음.
4) 관내정사(關內桯史) : <호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