讚佛歌)가 아닌 작자의 자서전과 같은 주관적 심정을 표현했다. 18세기에 들어서면 유학자도 불교가사를 지었는데, 김창흡(金昌翕:1653~1722)은 〈염불가(念佛歌)〉 22구를 지었다. 짧기는 하지만 매2구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여음을 붙였다. 생애를 자세히 알 수 없는 용암대사(龍岩大師)는 〈초암가(
讚佛歌)와 같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보현보살을 통하여 민중에게 불교를 전파하고자 한 누군가(균여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음)가 창작하여 민중에게 구전되어 오다가, 고려조에 이르러 《균여전》에 실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전되어온 향가를 왜 굳이 《균여전》에 실었는 가
월인천강지곡은 조선시대 세종이 지었다고 하는 악장체의 찬불가(讚佛歌)이다.
보물 제398호이고, 활자본이다. 원래 상·중·하 3권이었으나 지금은 상권 1책과 중권의 낙장(落張)이 전한다. 한글로 표기된 운문(韻文)으로서는〈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다음으로 오래된 작품이며, 종교성과 문학성을
1.조오현 시인의 불교적 배경과 역할
조오현은 강원도 신흥사의 회주이며 스님이자 불교의 세게를 명징하게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흥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 사찰 중 하나이며, 조오현은 이곳에서 스님으로 사제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중이가 되었던 조오현은 평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