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을 많이 받아온 남부의 함남 안변‧문천‧고원‧영흥은 대체로 중부 방언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영흥이남 지역은 고려시대에는 동북 변경이었으며, 영흥 이북의 함경도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여진족이 많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또한, 함북 지방은 동북 변경의 주민이나
방언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표준어와 사투리의 구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표준어는 우수하고 사투리는 상대적으로 저열하다는 인식이 깃들었다. 당연히 사투리의 인기는 떨어졌고, 그 고유의 특성을 잃어가고 있다. 사투리의 소멸과 동시에, 사투리 사용 지역의 생활 문화
방언은 느릿느릿하고 유연하며 서두르지 않고 단정하다. 말씨에서부터 점잖은 인상을 받는다. 느린 말 속에 여유와 은인자중의 무게가 있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품위와 절조가 보인다. 온화하고 말꼬리를 길게 빼는 여운 속에 착함과 평화가 깃들어 있다. 충청도 사투리는 편안하고 따스한 온기를 전
방언권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분포되어 있어서 지역언어학의 관점으로 보아 보수성을 지니는 점에 특히 관심이 모아졌고, 고어(古語)의 보고(寶庫)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6) 중부방언 위의 다섯 방언권을 제외한 지역, 즉 경기도•충청남북도•황해도•강원도의 대부분 지역에서 쓰
방언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전수 되었다. 조부모와 부모 손자 3대가 한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농업을 생계수단으로 하면서 이웃집과 교류하다보니 방언이 자연스럽게 전수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으로 부모와 자식이 사는 가정을 이루고 있어 방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