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산 문창교회 소송 사건
1951년 5월 25일 제36회 총회에서 경남법통노회가 축출되자, 총회는 이들과 관계를 같이하는 교회에 대하여 예배당 건물의 명도(明渡)를 요구하였다. 당시 총회 산하의 모든 교회 예배당들은 그 교회가 속한 노회의 유지 재단에 가입되어 있었으므로 총회가 인정하는 경남노
却說司馬相如, 因病家居, 只爲了長門宮中, 贈金買賦, 不得已力疾成文, 交與來使帶回。
각설사마상여 인병가거 지위료장문궁중 증금매부 부득이력질성문 교여래사대회
力疾 [l?j?] ① 병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하다 ② 매우 빠르다
交? [ji?oy?] 교부(交付)하다
각설하고 사마상여는 질병을 집에 살아
노회에 특히 많았다. 해방 직후 장로교에는 경기노회 산하의 조선신학교만이 운영되었는데 이 신학교는 신사참배를 허용했고 신학적으로도 개방적 색채를 띠었다. 갈등의 골은 조선신학교에 반대하여 부산에 세운 고려신학교(1946) 문제와 얽히면서 깊어져갔다.
경남노회의 교권은 신사참배자들에게
경기노회의 총대 명단의 조작성 여부의 문제로 양쪽의 주장이 충돌하여 마침내 분립까지 치닫게 되었던 것이다. 통합파는 곧 서울 연동 교회에서 속회를 가지고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WCC에서의 잠정적 탈퇴를 하면서 합동파와의 재결합을 모색 한다고 하였으나 그것이 그 시기에 제출된 제안은 아니
분열을 초래한 가장 구체적인 요인이라고 한다면 박형룡의 삼천만환 사기사건과 WCC탈퇴문제, 제 44회 대전총회 총대선정에 있어서 경기노회 총대 선거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에큐메니칼과 NAE간의 첨예하게 지속되는 대립으로 이어져 한국교회의 분열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