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建), 자는 약천(若天)으로 송악(개성)에서 출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후삼국시대에 궁예가 한반도 중부지방을 석권하고,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그 세력이 송악에까지 미치자 궁예의 부하가 되어 그의 명령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주에서 견훤의 군사를 무찌르는 등 군사활동에 있어서 큰 공을 세웠다.
견훤의 후백제(900), 궁예의 후고구려(901)가 건국됨에 따라 후삼국시기에 돌입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왕건의 고려에 투항함으로써 멸망
2. 통일신라 시대의 통치체제와 생활상
통일신라시대의 관부는 구조상 당의 6전 조직을 모방하였으나, 신라의 실정에 맞게 운영
ex ) 집
고려라 하고, 수도를 자신의 근거지인 개성으로 옮기고 내치(內治)에 힘쓰는 한편 외교와 군사작전을 통해 신라후백제와 대결했다. 후백제의 압력에 견디다 못한 신라 경순왕이 935년에 귀부해오고, 이듬해 내분을 이용하여 후백제를 멸망시켜 후삼국을 통일했다. 태조는 북진정책을 통해 고구려의 옛
과정을 거쳐 독자적인 세력을 확보였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책을 시행하였고, 그들에 의해 새로 건국된 국가가 일정한 기간 동안 독자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였다면, 그 국가의 통치조직은 어떠하였고 지배이념은 무었이었는지와 마지막으로 후삼국의 세 국가가 모두 신생 국가인 고려에 의해 멸망하
통일 국가 때보다 분열되었을 때 오히려 왕성한 열정과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천년왕국의 몰락과 그로 인한 혼돈이 걷히면서 3명의 걸출한 영웅이 전면에 우뚝 서게 되었다. 바로 궁예와 견훤(진훤으로 읽기도 한다.) 그리고 왕건이다. 이 세 사람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왕건의 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