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립되고 국제 교류가 활발해졌다. 고려는 중앙집권화되면서 농업과 수공업이 발달하고 조직체계도 개편되었다. 한글의 창제와 기록, 고려 시대 과학기술의 발전, 고려 회화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13세기 중반 이후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의 국력이 약해졌고, 1392년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조선 문화의 특징적인 여러 가지 청동유물들이 그 지역에서 많이 발견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一然)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조선(朝鮮)을 위만조선(衛滿朝鮮)과 구분하려는 의도에서 ‘고조선’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고, 그 뒤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세운 조선과
고조선부터 위만조선까지의 기사가 고조선에 대한 내용이다. 삼국유사 ‘기이편’ 중 고조선의 내용을 살펴보겠다.
『위서』에 이런 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 계셔 아사달-경에는 무엽산이라 했고, 또는 백악이라고도 했는데, 백주에 있다. 혹 개성 동쪽에 있다고도 하는데
위만 이전의 조선 역시 계급 사회라고 추측.
고조선은 멸망 후 낙랑군으로 문화가 계승되면서 삼국 사회 형성의 기본바탕이 됨.
고조선의 지배체제는 삼국 초기와 유사함.
삼국은 기원전 1세기 이후 고조선 사회의 외곽에서 중국 군현(郡縣)의 직·간접적인 지배에 저항하는 한편 중국 선진 문물의